26. 04. 25 제3회 대전퀴어문화축제 후기
작성: 진토
편집: 은
오늘은 대전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입니다. 들뜬 마음으로 일찍 눈을 떠 샤워를 마치고 나설 준비를 합니다. 주말에 나가보기는 처음이라 부산을 떨어서 잘 출발할 줄 알았지만 너무 여유롭게 걸어 나가려 했던 것인지, 외출하는 인원이 많이 몰린 위병소에서 시간을 꽤 잡아먹었습니다. 조금은 초조한 마음으로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매했던 대전행 버스가 눈앞에서 떠나가는 광경에 적지 않게 절망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30분 후에 출발하는 차표를 간신히 잡아 그걸 다시 예매하고, 기다리는 동안 늦은 아침으로 타코와 마운틴듀를 먹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대전에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것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축제를 반대하는 현수막도, 새하얀 이팝나무와 반가운 이들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퀴퍼를 즐기러 온 케세라의 수리, 삼사, 곰곰, 채원, 잣죽, 아버, 니나, 강이 중국집 원탁에 빙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주고받았던 식상한 안부인사들에는 방금까지 있다 온 곳에서는 느끼지 못할 따뜻함이 묻어 있었고, 성소수자 당사자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묶여 모인 이 집단은 이렇게나 편안했습니다.
부스를 보러 이동했습니다. 퀴어문화축제의 해방되는 느낌은 여러 번, 어느 곳을 방문해도 항상 기분 좋게 다가옵니다. 대전 특유의 정겹고 구수함 냄새가 나는 분위기가 빵퀴를 더 즐겁게 하는 듯합니다. 대전 퀴어문화축제는 처음 방문한 곳이라서 낯설었지만, 어떻게 즐겨야 할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해질 만큼 부스 단위의 참가 단위들이 동광장로를 화려한 축제로 만들었습니다. 네컷 부스에도 들러 수리, 강과 사진을 찍고 나눠가졌어요. 다만 오늘은 외출 일정이어서 나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행진까지 함께하지는 못하고 이만 복귀할 준비를 합니다.

케세라 일행을 따라 성심당에 잠깐 들르고, 카페에서 숨을 돌리다 케세라와는 작별하고 대전역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KTX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런. 주머니 속 소지품이 몽땅 사라진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카페 화장실에 잠깐 빼놨던 소지품을 그대로 놓고 온 것이었고, 대전에 남은 일행이 카페를 다시 찾아갔으나 기묘하게도 그 소지품들은 사라지고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좋은 날이니 웃어 넘기고 싶은 마음에 성심당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아무튼 무사히 복귀했고, 기록을 남기고 있는 지금은 내게 있었던 일들이 꿈 같이 느껴질 따름입니다. 그렇게 그리워했던 케세라 가족들도 만났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 수많은 퀴어문화축제의 사람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일이 꿈만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차별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오직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공개적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한평생을 보호시설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도 않은 병을 옮긴다며 목욕탕에 입장하기를 거부당하고, 무장한 경찰에게 무방비 상태로 살해당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먼발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지금 혹은 내일이라도 겪을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개최되는 퀴어문화축제가 내게는 환상적인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누군가는 화려하고 시끌벅적하게 광장에 나오는 우리를 두고,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괜히 피해를 준다,고 말합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쓴 김지혜 교수는 이 말들에 반박합니다. 평소에 도로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을지, 좁고 울퉁불퉁한 길에서 휠체어를 타고 유유히 활보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때 도로는, 광장은 그 어디보다도 성소수자와 장애인을 배제하는 공간이 됩니다. 비장애인, 이성애자를 위해 설계되고 작동하는 공간들이 공공 공간이라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설명될 때 그 공간을 사용하지 못하는 우리는 ’모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퀴어문화축제를 벌이고, 지하철 역사를 점거하고, 거리로 나와 우리의 존재를 알려야 합니다. 달의 뒷면에서 영원히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우리는, 기이하고 눈살 찌뿌려지는 사람들이 모인 퀴어 공동체를 형성해 공동체는 ‘집’이 되고, 자긍심을 재생산합니다.
지구에는 간단히 범주화할 수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퀴어문화축제는 그들이, 우리가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함께 생존하고 있는 집으로써의 퀴어, 성소수자, 트랜스, 장애인, 여성, 이주민, 유색인종, 홈리스, 수많은 억압 아래 살아가는 우리가 실존함에 놀랍도록 기쁘고 감사합니다. 자살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눈에 띄고 사랑할 때 내가 나로 존재합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제3회 대전퀴어문화축제 기록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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