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케-)세라 회원 에세이

[회원 에세이] 가능의 나라 대만에서 동성한테 고백한 썰 푼다

by pnuquesera 2026. 1. 8.

작성자: 개미
감수: 웹진 편집팀
교정 · 편집: 비타

 

 

대만 교환학생 가보자고!

생각해 보면 처음 대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어떤 대만 출신 아이돌이었다. 대만 출신 연예인들이 오픈마인드를 보여줄 때마다 팬들이 “역시 가능의 나라에서 온 사람은 다르다”라고 하던 주접을 본 적이 있다.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나도 어떤 대만 출신 아이돌에게 푹 빠지게 됐고 그의 퀴어프렌들리한 모습을 보면서, 대만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싶었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호감도가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때 생긴 호기심이 교환 국가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처음에는 중국사에 관심이 많아서 중국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비자, 보험, 기숙사, 비행기 등 교환학생 준비하는 과정이 이미 버거웠고, 중국에 가려면 인터넷을 쓸 때 필요한 vpn도 추가로 알아봐야 했다. 그래서 하나라도 짐을 덜 수 있는 대만으로 눈을 돌렸다. vpn도 필요 없고, 흔히 배우기 힘든 대만의 역사도 배울 수 있고, 또한 마침 대만의 퀴어 문화는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에 이런 이유들이 겹쳐서 결심했다. 가자, 가능의 나라로.
 
 

대만은 어떤 나라인가? 

아시아 최초 동성혼 합법화 국가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부터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웃나라 중국, 일본에 비해 대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는데, 교환학생으로 대만에 가게 되며 한국과 다른 문화를 길게 접해 볼 기회가 생겼다. 어떤 이는 대만을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케이팝을 좋아하는 딸”이라고 말했는데, 그 표현이 딱 맞다고 생각한다. 작은 고구마 같은 나라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대만 적응기

 대만 생활은 새롭고 즐겁고 평화로웠다.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날씨랑 음식만 제외한다면. 한국이나 대만이나 기온 30도 이상일 때 출국했다. 개강 후 한국은 점점 가을에 접어 들어서 기온이 20도까지 내려갔지만 대만은 여전히 30도 이상을 유지했다. 11월이 넘어서야 한치의 그라데이션도 없이 추워졌다가 갑자기 다시 30도가 되었다. 추운 건지 더운 건지, 지금 이 겨울인지 여름인지 알 수 없는 날씨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이런 날씨 때문인지, 대만에는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지만 전부 기름졌다. 한국의 담백하고 얼큰하고 달달하고 청량한 음식이 그리웠다. 그래도 좋았던 건 한국보다 채식 식당이 훨씬 많이 있고, 심지어 학식도 채식 코너가 따로 있었다. 대만 돈 50ntd(한화 약 2,300원)로 밥과 채식 반찬 4개를 고를 수 있다. 비건 카페도 있고, 비건 햄버거 집도 있었다. 나는 대만의 이런 점이 정말 좋았다.
 

(좌) 국립대만대학 채식 코너 학식 (우) 대만 비건 햄버거

 

대만 퀴퍼간 썰 푼다 

 중국어 수업에서 선생님이 주말에 뭐 할 거냐고 물었는데 서양에서 온 학생들이 퀴어 퍼레이드 갈 거라고 대답했다. 한국이었다면 퀴퍼갈 거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못한다. 참고로 대만에서 퀴어 퍼레이드는 同志遊行이라고 한다. 同志가 아마 퀴어인 것 같다.

타이베이 시 관공서 앞에서 진행됐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구경하러 갔다. 한국 퀴퍼를 아직 못 가봐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대만 퀴퍼는 어땠는지 간략히 얘기해 보겠다. 타이베이 시 관광서 앞 광장에 부스와 공연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음경 모양 무지개 부채를 들고 있었다. 부스에는 BL이나 퍼리 굿즈가 많았고, 나도 지나가다가 근육질의 퍼리가 잔뜩 그려진 티슈를 받았다.

퍼레이드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코스프레를 한 사람이나 전라에 하네스만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목줄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단체 전신 라텍스 혹은 피카츄 코스튬을 입은 무리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붐벼서 도중에 근처의 타이베이 101로 대피했다. 솔직히 반나체의 사람들과 몸을 부대껴야 하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무지개로 가득한 행진은 재밌었다. 한국 퀴퍼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025년 10월 25일 대만 퀴어퍼레이드 현장 사진

대만 대학교의 퀴어프렌들리한 순간들

 개강 전 국립대만대학 캠퍼스 투어를 하다가 한 건물에 성중립 화장실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대학 건물에 성중립 화장실이 자연스럽게 있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던 것 같다.

개강 후 일주일 뒤 동아리 홍보 부스가 열렸는데 거기에는 게이 동아리, 페미니즘 동아리, BDSM 동아리, 퍼리 동아리 등등 다양한 동아리가 있었다. 퀴어 전체를 포괄하는 동아리는 없는 게 조금 의아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혹시 퀴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이기 때문인가 싶었다. 레즈비언 동아리가 따로 있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어서 아쉽게도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언어 교환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어 좋았다. 그중에 친해진 대만 소녀가 한국 여돌 중 한 그룹을 엄청 좋아해서 한국어를 나만큼 잘했다. 그 친구는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남자친구 있어? 왜 없어?”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정말 곤란하다고 나에게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이런 부분은 한국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가능의 나라에서 한 달 동안 짝사랑한 썰 푼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믿으십니까? 저는 원래 안 믿었는데요, 이제 믿습니다. 동성을 짝사랑했던 이야기는 지인에게 풀 수 없는 썰이라 입이 근질근질했는데 회지에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하다. 아무튼 그 사람을 A라고 칭하고 싶다. A는 대만인은 아니었고, 교환학생 필수 중국어 언어 수업에서 만난 외국인이었다.

어느 날 A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줬다. 그 미소가 너무 예뻐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엠마 왓슨처럼 뚜렷한 이목구비에 중성적이고 시원한 느낌이 더해진 잘생긴 얼굴을 볼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때부터 A랑 눈을 마주치려고 음침하게 계속 힐끔힐끔 쳐다봤다. 내가 A를 볼 때마다 A도 나를 보고 있었고 매일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맞추고 서로에게 미소 지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A 나라의 언어를 하나도 못하고(1년이나 배웠는데도!) A의 중국어 실력도 별로 좋지 않아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A는 항상 나에게 먼저 말 걸어주었다. 연락 한 번 할 때마다 즐거웠고, 나에게 my dear라고 해준 것도 기뻤다.

헤어지는 날 용기 내서 “네가 그리울 거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고 A는 언제든 자기 나라로 오면 연락하라고, 혹은 자신이 한국으로 가겠다고 해주었다. 겨우 한 두 달 동안 좋아했고, 내 마음만 아주 조금 전했을 뿐 결국 아무 일도 없이 허무하게 끝났지만 그 애를 보고 두근거렸던 감각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잘생긴 얼굴로 아무한테나 웃어주는 거 유죄야.
 

대만에서는 전부 됩니다. 

중국어 수업에서 단어 설명할 때 로맨스와 연관된 단어가 나왔다. 한 학생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쓰는 말인가요?”라고 물어봤다. 대만인 선생님이 “아니요, 대만에서는 전부 됩니다.”라고 대답하신 게 아직 기억에 남는다.

대만인들이 어떤 특별한 것을 보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들에게 존중과 배려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곤란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나서서 도와주고, 아무도 물건을 훔쳐 가지 않고, 밤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나라. 순수하고 소박한 나라. 다름을 차별의 근거로 두지 않고 그저 하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나라. 그런 마음이 모여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의 기반이 된 것 같다. 이방인인 나를 선뜻 도와준 사람들, 나랑 놀아준 대만 소녀들, 좋아했던 친구, 대만에서의 모든 경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끝)

(좌) 타이베이 서문홍루에서 찍은 사진 (우) 타이베이 시먼딩 무지개 횡단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