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채원
감수 · 편집: 비타

스몰토크의 나라로
“What brings you here?”
“쏘리? 왓 아이 브링?” 뭘 가지고 왔냐고?
“No no, I mean why did you come to Canada.”
평생을 살아도 좀처럼 나라와의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 가부장제, 정상성 수호의 나라에서 비건, 퀴어, 페미니스트 같은 수식어를 달고 사는 건 짜릿하지만, 피곤했다. 한국을 벗어나면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학교도 다니기 싫은 참에 워홀을 가기로 했다.
호주가 아닌 캐나다였던 이유는 단순했다.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눈이 쌓이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따뜻한 남부에서 평생을 지낸 사람이라면 눈에 대한 로망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언젠가 눈 위에 뿌려 굳힌 메이플 시럽을 돌돌 말아야 사탕을 만드는 영상을 본 뒤로 캐나다는 꿈의 나라가 되었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앓는 소리로 시간을 끌다 겨우 내뱉은 문장은 이런 식이었다.
“음... 스노우, 메이플 시럽 슉슉 앤드 돌돌 메이크 캔디. 댓츠 마이 로망.”
“No no I mean what do you really want to do in Toronto”
그들은 친절하지만 집요하게 문장을 요리조리 바꿔가며 토론토에 온 진짜 이유를 물어 왔다. 이미 하루치 기력과 영어를 다 써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댓츠 올, 댓츠 올” 그게 다라며 웃어버렸다. 평생 연마해 온 내향인의 필살기, 맥없는 웃음으로 대화를 무마시키기 권법이 토론토에서도 통해서 다행이었다.
1. 용감해지기
이력서를 내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캐나다 구직 앱이라던 인디드로 20곳이 넘는 서버 자리에 지원했지만, 답은 영원히 오지 않았다. 온라인 지원은 잘 확인하지 않아 직접 이력서를 내러 가야 한다는 블로거의 말이 사실이었다. 구인 공고를 찾아 반쯤 뒤틀린 자세로 수상하게 거리를 거닐다 발견한 첫 번째 가게 앞에서 십 분을 망설였다. 이 문을 열고 일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등 떠밀려 가게로 들어섰다. 집을 나서던 순간부터 수백 번은 되뇌었던 일을 구하고 있다는 간단한 문장조차 뚝뚝 끊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력서만 겨우 건네고 도망치듯 나왔지만, 어쨌든 처음을 해내니 다음은 두렵지 않았다. 뭐라고 하는지 몰라도 “아이 캔두 애니띵 애니 타임”. 뻣뻣한 미소와 치켜든 엄지로 공수표를 날리며 공고가 붙은 모든 가게에 이력서를 돌렸다.

일하고 싶었던 채식 식당에 취직은 했지만 여전히 언어가 문제였다. 유튜브로 ‘레스토랑 실전 영어’ 같은 영상만 주야장천 보고 갔더니 스몰토크란 거대한 복병을 만났다. 자꾸만 대화를 시도하는 손님들을 피해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어슬렁거리다가 결국 매니저에게 발각되었다. 그는 농땡이 치는 직원에게 화내는 대신 먼저 다가가 필요한 건 없는지 살피고 영어를 못해도 괜찮으니 숨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손님을 그저 돈이 아닌 친구로 대하는 것이 서비스라고. 숨지 않고 마주한 손님들은 이상하리만큼 친절했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짜증과 화가 돌아오던 한국과 달리, 되물음엔 더 쉽고 느린 문장으로 답해주었고, 엉터리 문법으로 내뱉은 문장을 내뱉어도 알아서 해석해주었다. 외면했다면 영원했을 거대한 두려움은 몇 번의 두드림만으로도 잘게 부서졌다. 이제는 먼저 스몰토크를 시도하지만 여전히 대화의 절반 정도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도 중요한 건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 다가가고 노력하는 마음이란 걸 알게 됐다.
2. 여름을 즐기기


6월 중순, 프라이드먼스의 한가운데 선 도시는 무지개로 가득했다. 드넓은 도시 어느 곳에 있어도 환영받고 있다는 감각에 울컥했다. 출국 일정이 계속 밀려 토론토 퀴퍼에 가지 못할까 내심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알맞은 때에 도착했다. 한쪽은 부스, 다른 쪽은 행진을 위해 비운 양쪽 대로가 참가자로 북적였다. 부스 중간중간에 설치된 작은 무대에선 디제잉과 춤 공연이 펼쳐졌다. 누가 공연자고 관중인지 구분이 불가할 정도로 함께 환호하고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무대에 난입해 함께 엉덩이를 흔드는 상상을 했다. 흥이 더 올라 추한 꼴을 보이기 전에 퍼레이드 참가를 위해 반대 길로 향했다. 그렇게 출발점을 찾아 헤매던 중, 한국과 달리 사전에 신청한 단체만 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울타리 밖에서 강렬한 비트의 팝송에 맞춰 행진하는 화려한 이들과 퍼레이드 카를 보고만 있자니 흥이 나면서도, 마음 한켠에선 퀴어 자격 박탈로 강제 앨라이가 된 듯한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후에 그날의 행진이 무려 세 시간 동안안가까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편하게 서서 호응을 보내다 언제든 귀가할 수 있는 앨라이 포지션을 체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토론토의 여름은 짧고 시원하다. 폭염 경보가 있었던 며칠을 제외하면 부산의 초가을 날씨와 비슷한, 야외 활동에 최적화된 환상 속의 날씨가 이어졌다. 이것은 가을이 곧 부산의 겨울 날씨와 비슷하다는 의미기에 추위가 오기 전에 따스한 햇살을 즐겨야 했다. 도시락과 돗자리를 챙겨서 나가면, 어디로 향해도 쉽게 공원을 찾을 수 있었다. 부산에서는 공원에 가려면 최소 1시간은 걸어야 했는데, 지금은 도보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큰 공원만 해도 5개가 넘는다. 큰 땅덩이만큼 거대한 나무 그늘에 누워만 있어도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주말이면 매주 어디서든 크고 작은 축제가 열렸다. 그때는 왜 이렇게까지 많은 축제를 집중적으로 여는지 잘 몰랐는데, 급속도로 추워지는 날씨를 몸소 느끼며 그 짧은 여름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나날이 깨닫고 있다. Burlington vegfest, VegTo, Vegandale 같은 비건 축제도 이쯤에 연달아 열렸다. 한국에서는 비건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동물성 제품이 섞여 있어 시식 및 구매 전 정보를 꼼꼼히 확인해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비건이었다. 한정된 면적과 시간 속 펼쳐진 비건 세상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의심과 질문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경험이 무척 오랜만이라,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동시에 여기저기 버려진 일회용품을 보며 비건 지향을 시작한 건 ‘비건’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물권과 기후 위기 때문이었음을 떠올리는 시작의 마음을 다시금 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라고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맛있게 먹고 재밌게 놀았다.
3. 받아들이기
사람 10명, 고양이 1명에서 화장실 하나를 나눠 써야 하는 2인 1실의 인당 월세가 73만 원이란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과일은 절반 넘게 싸지만, 나머지 식재료는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싼 것 같다. 외식 비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왜인지 메뉴판에 세금을 붙이기 전 가격을 적어 놓기에 마음 놓고 주문했다가 계산서를 받으면 세금에 팁까지 붙은 최종 금액은 한국의 2~3배를 훌쩍 넘는다. 마라탕 집에서 신나게 재료를 골라 담았다가 한 그릇에 6만원을 지불한 뒤로는 외식을 자제하고 있다. 버스, 지하철, 스트릿 카1 요금은 3,300원이다. 물가에 대한 불만은 첫 월급을 받고 사라졌다. 최저 시급 17,600원에 팁까지 더해지니 주 40시간을 꽉 채워 일하지 않아도 충분한 생활에, 저축까지 가능했다.


길을 나서면 풍겨오는 대마 냄새, 바닥에 눕지 못하는 집, 지나치게 짜고 단 음식에 적응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평불만을 토해도 바꿀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뭐든 좋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대마 냄새를 피해 다녔더니 오히려 담배에 관대해져, 평생 싫어했던 담배 냄새가 달콤하게 느껴질 지경에 이르렀다. 바닥에 눕지 못하는 대신 청소를 대충 해도 돼서 편하다. 바닥이 아무리 더러워도 슬리퍼만 깨끗하면 언제든 보송한 발로 지낼 수 있다.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한 소중한 음식이 소금 덩어리처럼 느껴질 때 여전히 절망스럽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어느 식당을 가든 비건 옵션이 있고, 심지어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삶의 질을 대폭 상승시켰다. 부산에 두고 온 베지나랑, 러브얼스2, 꽃사미로, 오굳띵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돌아가면 토론토의 무수한 선택지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이다. 여전히 한국과의 비교를 멈출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두고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디서든 살 수 있게

토론토에 머물기로 계획했던 기간의 반 이상이 지나갔다. 이곳에서의 삶이 더욱 자유롭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서툰 언어만큼 알 수 없는 도시의 문법을 무시하고,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건 막막하면서도 통쾌하다. 기대보다 즐겁지만, 생각보다 한국에서의 삶이 편안했음을 깨닫고 있다. 길에서 아무 이유 없이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마주하고, 분명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음에도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며 무례하게 굴어도 입에서는 땡큐 쏘리 같은 말밖에 나오지 않을 때, 손꼽아 기다렸던 웬디의 첫 단독 콘서트에 가지 못하고, 가족이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면 한국어로 소통하며 평생 쌓아온 시간과 관계가 있는 한국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동시에 넘쳐나는 비건 식당, 퀴어 프렌들리한 환경, 여유가 흐르는 도시를 두고 한국에서 평생 살기도 싫어 돌아가기도 전에 다시 떠날 곳을 탐색하고 있다.
비록 지상 낙원 찾기엔 실패했지만, 이제는 여기 이런 삶이 있다는 걸, 떠나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 어느 곳이든 장점만 쏙쏙 골라 담아 완벽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어디에 있든, 그 도시를 힘껏 누리며 살아야겠다. 한국으로 돌아갈지, 캐나다에 눌러앉을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으로 떠나게 될지,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앞으로는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내일이면 토론토에 첫눈이 온다고 한다. 환상 속의 메이플 사탕을 곧 맛볼 수 있겠다. (끝)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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