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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세라 대담

[인터뷰] 코로나 시대를 건너서— 케세라 회지 편집자 랑팽을 만나다

by pnuquesera 2026. 3. 23.

 
인터뷰어: 비타
인터뷰이: 랑팽


일시: 2026. 03. 22. 19:00-20:40
장소: 온라인 줌미팅

 

"기록**" 시리즈 2

 

201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성소수자 동아리들은 2020년을 거치면서 사라졌다. 부산인권플랫폼파랑에서 발간된 「2024 부산·울산·경남지역 퀴어 단체 및 커뮤니티 현황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각주:1] 2010년 당시 경상권에만 10여개 이상의 성소수자 모임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곳은 드물다. 분명 코로나라는 시대적 요인으로 활동이 주춤한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성소수자 모임이 자리잡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각주:2] 그러한 시간 속에서 부산대 성소수자 동아리 케세라는 2020년에 회지 『뭐지, 걔들』을 발행하였다. 완성된 70권의 회지는 택배로 흩어졌다. 오늘은 회지를 만든 편집자 랑팽을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프닝 — 안녕하세요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안녕하세요. 활동명은 랑팽입니다. 케세라에는 2018년에 가입해서 2020년까지 지냈고요. 졸업하고 나서 상경해서 지금 서울살이 4년 차입니다. 
 
—랑팽이라는 활동명 뜻이 궁금해요!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웃음) 이제 흔한 이름으로 지으면 다른 회원들과 겹칠까 봐 특이한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이렇게 물어봐 주시니 그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네요.


1부 — 케세라에서의 시간

Q. 케세라에 가입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트위터를 열심히 하다 보니 케세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바로 가입하지는 않고 한 학기 정도 고민하다가, 부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아무래도 일상에서 퀴어 커뮤니티를 만나기는 어려우니까, 다른 퀴어 분들도 만나보고 싶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궁금해서 가입하게 됐어요. 제가 가입했던 당시에는 QIP도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는] 부산 전체 퀴어 커뮤니티 느낌이라 규모가 크고 좀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케세라는 학교 동아리라 좀 더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었어요.
 
Q. 동아리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 모임을 했어요. 거점공간이 없어서 강의실을 빌려서 간단하게 회의를 하고, 뒤풀이로 보드게임을 하거나 같이 노는 시간이 많았어요. 당시에 부경대 성소수자 동아리 '용사길드'랑 같이 조인트 해서 놀았던 기억도 있고요. [동아리에서] 뭔가 대단한 활동을 했다기보다, 눈치 안 보고 퀴어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저는 동아리에 그렇게 오래 안 있었어요. 2019년에 제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동아리 활동에 멀어졌고, 시기적으로는 2019년 겨울에 코로나가 발생해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던 시기기도 했어요.
 

—당시에도 케세라가 정동아리 등록을 시도했다고 들었어요.
당시에도 케세라가 정동아리 등록을 계속 시도하고 있었어요. 준동아리로는 승인 됐는데 정동아리 신청을 하면 기독교 동아리에서 반대를 해서 번번이 탈락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비타: 작년에 케세라 정동아리로 승인 됐어요.] 그게 [제가 가입한 지] 7년이 지나서야 겨우 됐다니, 좀 충격적이긴 하네요.
 
Q. 케세라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사람들] 만나는 일이 제일 즐거웠죠. 봄에 벚꽃 보러 가기도 했고, 부산대 인권센터에서 하는 세미나가 있었는데 , 그런 행사에서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재밌었어요. 제가 주체적으로 뭔가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닌데 케세라라는 동아리를 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생각해 보면 성소수자 정체성이라는 공통점이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법한 사람들과 어울렸던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퀴어라고 하면 '한줌따리'라는 말도 하는데, 막상 와보니 활동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기억에 남아요. 
 

2019년 부산대 페미니즘 동아리, 성소수자 동아리 등을 포함한 학내 구성원들이 성평등 세미나에 참석하여 발제를 하였다.


2부 — 회지를 만드는 일

Q. 어쩌다 회지를 만들게 되셨나요?
활동 회의를 하면서 [2019년에 개최될] 부산퀴퍼에 맞춰서 회지를 만들어 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부산시와의 갈등으로 인해  부산퀴퍼는 개최되지 않았지만... 회지 제작은 시사화 님이 먼저 얘기를 꺼냈고,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TF팀을 구성했긴 하지만 작업의 대부분은 저랑 시사화 님이 맡았고, Cyb 님과 규린 님이 글을 써주시거나 인터뷰에 참여해서 도와주셨어요. 시사화 님은 텀블벅 리워드 굿즈 기획을 맡고, 저는 회지 파트를 담당했어요. 

— 거의 두 분께서 다 하셨네요.
[회지 제작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기 어려운 게 이게 편집 작업 자체보다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훨씬 많거든요. 원고들을 기획해서 필진들에게 요청하고, 단톡방에서 에세이를 써달라고 요청해서 본문을 만들었고, 받은 글들을 교정 교열 편집해서 회지를 발간했었던 기억이 나요. 

Q. 회지 기획 방향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처음 읽었을 때 되게 학술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당시는 페미니즘 담론이 재활성화되던 시기였고, 학교에서 인권 활동을 하다 보면 퀴어 동아리와 페미니즘 동아리(여명)가 만날 일이 많았어요. 멤버도 여명 활동을 함께 하시는 분들이 많았고요. 퀴어와 페미니즘은 관련이 깊으면서도 서로 부딪히는 부분이 있잖아요. 터프TERF 얘기도 있고, 성소수자 동아리 내부의 여성혐오 문제도 있고. 그런 부분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내가 '나'로서 있기까지는 커밍아웃 에세이인데, 단톡방에서 쓰고 싶은 분들을 모집했어요.
 
— 랑팽 님이 쓰신 글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퀴어, 페미니즘, 그리고 책이라는 제목으로 퀴어 이론과 관련된 글을 썼어요. 저는 제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퀴어 이론에서 찾으려고 했어요. 도서관에서 《젠더 트러블》이나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 같은 책들을 읽었고, 읽고 난 뒤에 휘발되니까 뭐라도 써보자 해서 쓰게 됐어요. [이 글은] 어떤 의미에서는 '퀴어로 있다는 게 뭔지'에 대한 저 나름의 답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퀴어 페미니즘 챕터 뒤쪽에 추천 도서 목록도 넣었는데, 이런 정보들이 찾기 어려우니까 담아두면 좋겠다 싶었어요.
 

2020 케세라 회지 《뭐지, 걔들 》 목차.


 
Q. 회지 제목 《뭐지, 걔들》은 어떻게 정해졌나요?
전체 회의에서 같이 정했어요. 원래 후보는 《무지개들》이었는데 최종적으로 《뭐지, 걔들》로 바뀐 거예요. 소개 페이지에 "당신이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곳에 있는 무지개들"이라는 문구도 같이 회의에서 정한 것 같아요.
 
Q. 표지 디자인은 어떻게 결정됐나요?
표지 후보를 여러 개 만들어서 투표로 정했어요. 부산대 정문에 넉터라는 공간 앞에 무지개 문 조형물이 생겼었거든요. 무지개가 퀴어를 상징하는 거잖아요. 그 느낌이 있어서 넣었어요. 바다 이미지도 부산이니까 자연스럽게 들어갔고요. 글 중심의 회지라 디자인이 화려할 필요는 없었어요. 인디자인으로 작업했는데, 보기 좋게 편집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2020년 발간된 케세라 웹진 《뭐지, 걔들》의 초기 표지 디자인. 당시 제목 후보는 《무지 걔들》로 중의적 표현을 의도하였다.

 
Q.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텀블벅 후원을 받았어요. 80만 원 정도를 개인이 감당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회비를 쓰기도 애매했거든요. 텀블벅으로 하면 수요가 확실하다는 장점도 있었어요. 후원해 주시는 분들은 다 받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니까. 후원받은 게 38명, 81만 5천 원이었어요.
한 가지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글 써주신 분들께 원고료를 드리는 것이었어요. 동아리 활동이다 보면 좋은 일 하는 거라며 공짜로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잖아요. 그게 싫어서, 미리 예산을 짜고 원고료를 먼저 챙겼어요. 발행한 부수는 70권이었는데, 원래 퀴퍼에서 판매도 하고 독립서점에도 내려고 계획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게 다 안 됐어요.
 

텀블벅 펀딩을 통해 회지가 창간되었다.

 
Q. 가장 힘들었던 부분과 애착이 갔던 부분이 있다면요?
가장 힘들었던 건 마감에 맞춰 글을 받는 거였어요. 혼자 하면 내가 맞춰서 하면 되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다 보니 그런 어려움이 있었어요.
애착이 갔던 건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였어요. 편집하고 책을 만드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든요. 학술적인 얘기도 담고, 가벼운 얘기도 담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으면서 여러 주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요.
 
Q. 발행됐을 때 반응이 궁금해요.
그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에요. 2020년 4월이면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오프라인으로 모일 수가 없었어요. 텀블벅 후원자 분들께 보내드리는 것 정도가 전부였고, 그분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들을 기회가 없었어요. 지금도 궁금해요.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후련했어요. 시간을 쪼개서 했던 일인데, 제법 완성도 있게 나왔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이게 창간호였으니까 계속해서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그게 되지 않아서 아쉽기도 해요.
 

 


3부 — 졸업 후, 지금

Q. 졸업하고 서울에서 사시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와는 어떻게 연결되어 계신가요?
지금은 따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사회에 나오면 오히려 찾기 더 어렵더라고요. 동아리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찾으면 찾을 수 있겠지만 야근하고 출근하다 보면 주말에는 그냥 집에 있는 게 좋고. 퀴어 커뮤니티뿐 아니라 제 삶에서 커뮤니티 자체가 좁아진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홍예당에 정기 후원은 하고 있어요. 홍예당은 트위터에서 홍보 트윗이 넘어와서 알게 됐고, 지역에서 활동 공간을 만들려는 곳이라 좀 더 의미 있게 느껴졌어요.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할 수 있는 게 후원밖에 없으니까요.
 
Q. 지금 회지를 준비하고 있는 웹진 편집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디자인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돼요. 회지는 결국 글 위주이고, 보기 좋게 편집하는 것이 목표지 디자인이 화려할 필요는 없어요. 한글로도 책 잘 만들 수 있어요. 정 모르겠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책 만드는 업체도 몇 개 알고 있고,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발행 부수는 수요 조사를 먼저 하고 결정하세요. 생각보다 가져가시는 분이 많지 않을 수 있어요. 특히 퀴어 회지라는 특성상 아웃팅이 걱정되어 안 가져가시는 분도 계실 테니까. 배포할 때도 다른 단체에 미리 연락해서 협의하는 게 좋아요.


나가기 전에

Q. 졸업생으로서 이 글을 읽고 있을 케세라 구성원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졸업생으로서 얘기해 달라고 말하니 좀 부담스럽네요.  (웃음)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퀴어성이 삶에 중요한 부분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 당장 하루하루 일하고 월급 버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는] 퀴어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가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지금 내 생활이] '탈반'에 가까운 건가?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퀴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퀴어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그거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어쨌든 지금 저는 남들 사는 만큼 살고 있고요. [이 글을 읽고 있을 대학생 분들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면서 사는 게 좋을 것 같고 지금 당장 미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취업이나 먹고사는 고민 때문에 연애나 친구 만나기를 멀리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대학] 졸업하면 점점 더 일이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꾸리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인터뷰 응해줘서 감사합니다.
네, [회지] 작업하다가 궁금한 점 생기거나 필요한 일 생기면 도와드릴 테니 편하게 연락 주세요. (웃음)
 


인터뷰 in 인터뷰. 

인터뷰가 끝나고 난 뒤, 회지에 대한 반응이 지금도 궁금하다는 랑팽님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이에 편집자는 텀블벅 후원자명에 적혀 있는 명단을 확인한 후, 당시의 회원들 몇명을 만나서 후속 인터뷰를 진행했다.

 

 

* Cyb


 동방이 없던 당시에는 어디에서 모였나요?
2019년 대표를 역임한 분이 '영어 회화 스터디'를 한다는 명목으로 강의실을 빌려 정기 총회를 진행했어요. 초기에는 강의실에 누가 올까봐 눈치를 살피면서 했었어요. (웃음)

 회지 기획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학내 혐오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회대 페미니즘 소모임, 페미니즘 중앙 동아리 여명 등 여럿 단위가 모여 공동으로 입장문을 정리하는 일이 몇 번 있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퀴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 2019년 학술부장과 대표님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표지 디자인은 어떻게 결정되었나요?
다른 후보로 부산대학교 상징인 독수리나 해안도시 부산을 대표하는 바다, 파도가 있었는데 차별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결과적으로는 무지개문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발행되었을 당시의 반응이 궁금해요.
 2020년 1학기에 발매했으니, 1년에 한권씩 발간해서 쌓여있는 회지를 보고 싶었는데, 이후 동아리 운영 상황이 어려워져서 운영위로서 안타까웠어요.


*키비


 케세라는 어떤 동기로 가입하셨나요?
저는 고등학생 떄부터 대학교 입학하면 퀴동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9년도 2학기에 케세라 가입하고 나서 동아리 사람들과 경남퀴퍼를 갔었던 기록이 가계부에 남아있네요. (웃음)

 케세라 활동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당시에 제가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분이 계셨는데, 코로나 시기라 모임 자리도 거의 없었고 제가 먼저 연락해서 놀자고 말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결국엔 말을 걸지 못한게 기억에 남아요.

 발행되었을 당시의 반응이 궁금해요.
 발행되고 나서 택배로 회지를 받았어요. 회지를 처음 읽었을 때 제가 안면이 있는 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알 수 있었던 인터뷰 지면이 재밌었고. 저도 당시에 에이로맨틱으로 정체화 했었던 적이 있어서 커밍아웃과 관련된 글들이 공감이 됐어요.

 최근에 관심가는 것이 있나요?
 히티드 라이벌리! 아이스하키 소재의 퀴어 드라마인데 한국에 정식 수입되길 기다리고 있어요 ~_~


* 장복길


 기억에 남는 활동이 궁금해요
당시 저는 여명 활동과 케세라 활동을 함께하고 있었는데, 카페 드팽에서 모여 같이 대자보를 작성했었어요. 그리고 보드게임 카페 가거나 같이 모여서 과제했던 소소한 기억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또 기억에 남는건... 텀블벅 굿즈 엽서를 제작하려고, 캠퍼스에 모여서 잘 모르는 구성원들과 포즈를 취했던게 너무 낯선 경험이라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회지 기획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2019년 당시는 "대텀블벅"의 시대였어요. 케세라에서도 굿즈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게 회지 제작으로 이어지면서 굿즈 제작에서 회지 제작이 주력으로 바뀐 것으로 기억해요.  

 혹시 동아리 연합회 세칙 '차별하지 않을 권리'에 성 지향성과 정체성 항목이 들어간 경위를 아시나요?  
페미니즘 동아리 여명 회장이었던 재윤씨가 당시 동아리 연합회 회장과 친해서 입김을 넣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비타: 여명을 향해 절해야겠어요.)

 발행되었을 당시의 반응이 궁금해요.
텀블벅 TF 팀들의 노고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죠. 익명으로 원고 투고를 했지만 더 많이 협력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게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어요.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