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비타
| '기록 xx'는 부산[대]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였던 QIP(Queer In Pusan)와 부산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케세라의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획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2016년 QIP의 대표를 맡았고, 현재 부산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의 운영위원이자 퀴어 친화적인 상담 활동을 하고 있는 깻녹 님을 만나 퀴어 커뮤니티에서의 경험과 의미에 대해 물어보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
일시: 2026. 05. 27 19:30-22:00
장소: 부산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
만난 사람
● 깻녹 (인터뷰이)
| 목차 1. 자기소개 2. 정체화 과정-문학 카페에서 A를 만나다. 3. 정체화 과정-퀴어 커뮤니티 입문 3.1 QIP 연말파티 3.2 QIP에는 마녀들이 있다? 3.3 QIP 이후의 커뮤니티 활동-부산 녹색당, 홍예당 4. 상담사 깻녹 5. 나가며—커뮤니티는 만나고, 놀고, 미끄러지는 곳 |
1. 자기소개
비타 안녕하세요, 깻녹님. 자기소개와 최근 근황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깻녹 간단한 자기소개요? 저는 93년생이고, 게이고, 비선호고, 또 뭔 말을 해야 되지? 깻녹이라고 하고요.
비타 (웃음) 포지션까지는 알려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깻녹 술번개가 익숙해서 그런가. (웃음) 최근 근황은 콜센터에서 계약직으로 8월 말까지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상담 자격증 따려고 공부하고 있고 잘 놀고 다니고 있습니다.
2. 정체화 과정-문학 카페에서 만난 A.
비타 진부한 질문이지만 정체성을 자각하는 과정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깻녹 전형적인 이야기인데 중학교 때부터 체육 시간에 옷을 갈아입잖아요. 그럼 뭔가 부끄러워서, 항상 TV 뒤에 들어가서 옷 갈아입었던 것이 있었고, 확실하게 자각한 건 중학교 2학년 당시에 제가 네이버 문학 카페에서 활동을 했었거든요. 거기서 만난 [한살 위였던] 울산 애였는데 그 남자애[이하 A]를 정모에서 만났어요, 처음에는 좀 꺼드럭댄다고 생각해서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 만나고 세 번째 만나고 하면서 얘가 좀 되게 약간 츤데레 스타일인 거죠. A가 엄청 틱틱대면서도 사람 잘 챙겨주는 스타일 있잖아요. 그게 되게 매력이 있었던 거지.
비타 문학 카페는 어쩌다 가입하게 되신 거예요?
깻녹 처음에 가입한 곳은 인터넷소설닷컴. 처음에 류시화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나도 이런 거 써보고 싶다, 이거 나도 쓸 수 있겠는데' 약간 이런 마음이 들어서 네이버에서 ‘시’ 이렇게 검색했어요. 그때 처음 나오는 카페가 인터넷소설닷컴이었고요. 인터넷소설닷컴이 뭐 하는 데냐면 귀여니 소설같은 웹소설을 쓰는 곳이었는데, 카페에서 자신들은 귀여니 소설과는 다르다고 격을 두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카페가 이제 문학 카페에요. 인터넷소설닷컴은 2만 명 되는 큰 카페로 당시 네이버에서 소설 카페 중에 거의 한 1, 2위 하는 그런 카페고. 이제 거기에서 파생된 곳에 들어간 거죠.
비타 2만명 규모의 인터넷 소설 카페에서 이제 200명 규모의 문학 카페. 거기서 한 살 위 형인 A를 만났군요.
깻녹 형이라기 보다는 동갑이에요. 왜냐하면 내가 빠른 93이고, A는 92년생이었거든.
제가 처음 '내가 얘를 좋아하나'로 자각한건 문학 카페 사람들과 같이 경주 팬션으로 놀러갔던 때였어요. 버스 정류장에서 제가 차선 바깥에 있으니까 A가 위험하다면서 탁 잡아당겨서 안았단 말이야. 그래서 안으로 싹 넣었어, 나를. 근데 이렇게 탁 안기는데 느낌이 약간 살짝 전류가 흐른 거야. 그때 제가 살짝 설레가지고 [비타: 오마이걸 되셨네요.] 약간 이렇게 가슴이 막 둥둥하더라고요.
비타 지금도 그분과 연락하는 사이인가요?
깻녹 지금은 연락 안 해요. 그때 짝사랑 정병을 심하게 앓았어요. 16살때부터 21살까지 좋아했어요. [짝사랑을 앓으면서] 너무 정병이 심하게 왔었거든. 왜냐면 제가 내면화된 호모포비아가 있었던 거지. 얘와 잘 돼도 얘가 게이로 살게 되는데, 그럼 내가 얘를 더럽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얘가 여자애들하고 잘 사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걸 곁에서 볼 때마다 정신병이 확 오는 거예요.
비타 절친 위치에서 짝남의 연애를 본다는 건 사람을 미치게 하죠.
깻녹 걔는 소설 쓰는 재능이 있는 애였어요. 심지어 시도 잘 썼었고요. 대화할 때 자기가 들었던 이야기라든가 혹은 소설 속의 내용을 설명하는 데 엄청 매력이 있어서 좀 더 매료되었던 것 같고. 저한테 네가 여자였으면 걑이 살았을 텐데, 나 스무 살 되면 너랑 같이 자취하고 싶다 뭐 이런 얘기를 한다든가 그랬어요. [비타: 유죄] 그리고 A는 아마 제가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시를 쓸 때 제 마음을 표출을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21살 때 A와 멀어지게 된 계기가 생겼어요. 문학 카페 여자 카페 회원이 저한테 이제 연애 상담을 해 온 거예요. 근데 이제 그 상대가 제가 좋아하는 애였던 거죠. 저는 이제 얘하고 잘 돼라는 마음으로 조언을 했어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제가 A가 이제 저한테 카톡이 왔어요.
"니 내 뒷담 하고 다니냐?"
그때가 한 밤 12시였어요. 제가 전 직장을 다닐 때 였는데, 그때 욱해서 솔직하게 얘기해 버렸어요. 미안하다. 나는 사실 니가 여자애하고도 잘 되고 이제 그러면 했으면 마음에서 그랬다.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않냐, 나랑은 잘 안 될 거 아니까, 그냥 이 여자랑 훨씬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는 그렇게 했다.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얘가 딱 1분동안 [말을] 멈추더라고요.
그러고서는 알았다, 잘 자라. 이렇게 얘기하고 연락이 끝났는데, 뭔가 너무 서러웠어요.
비타 이건 거절도 아니고… [게이로서] 내 존재가 부정된다는 느낌이네요. 그러니까 사회에서 게이라는 것의 위상이 뭔지 확 세게 들어온다는 느낌.
깻녹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A는 그 여자애한테 감정이 이미 안 좋았던 상태였고, 여자애가 카톡으로 나한테 하소연하는 것들이 A 입장에서는 좀 예민한.. 걔가 원래 좀 성격이 예민했거든. 얘는 제가 그 여자애보다 자기랑 훨씬 더 친한데 내가 여자애랑 말했던 게 뒷담화처럼 느껴져서 기분 나빴던 거지.
비타 ... 질투하는 무자각 헤테로 클리셰처럼 들리는데요? 약간 홧김에 커밍아웃과 고백을 하신 거네요.
깻녹 커밍아웃은 되게 애매해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문학 카페에서 시 쓰면서] 은연 중에 나왔던 거죠. 지금도 제가 나이가 들었지만 좋아하면 좋아한다 말을 못하는 이소라처럼 처음 느낌 그대로에요.
비타 요즘 이소라는 자기 감정 얘기하더라고요.
깻녹 요즘 이소라는 바뀌었지.

비타 문학 카페에서 기억에 남는 다른 일화들도 있나요?
깻녹 저희가 매일 카페 채팅으로 연락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아는거죠. 카페 채팅방 중에 빨간 사막이라고 19금 얘기하는 방이 있었는데, 저는 여자 얘기 너무 안 한 거죠. 카페에 고등학교 동급생도 있었는데 그 친구가 너는 여자 얘기를 너무 안 한다. 니 좋아하는 여자 누구냐 이렇게 물어보길래 할 말이 생각이 안 난 거야.
비타 남고 출신이셨어요?
깻녹 남고 출신이에요. 근데 지금 정신과 의사하고 상담하는 것 같아요. 내가 무슨 말 할때마다 키보드 다다다다 치는 게.
비타 티 안 나게 하려고 했는데 (웃음) 아무튼 이야기 이어가주세요.
깻녹 하여튼 생각이 안 나서 그냥 씨엘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친구가] 엄청 당황하면서 진짜 씨엘 좋아하는거 맞냐고 다시 물어보더라고요.
비타 여자 얘기를 안 해서 게이로 의심 받았는데 씨엘을 이상형으로 말하셨군요. 너무 뭔가뭔가 기개가 대단하네요.
깻녹 대놓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고 친하게 지내던 4명 있었는데 제가 좋아했던 A가 가는 모임에 제가 안 나가는 걸 보고 눈치를 조금 까기 시작하는 거지 몰라요.
비타 [A에게] 커밍아웃 하고 난 뒤의 관계는 어땠나요?
깻녹 그 말을 한 이후에도 만났어요. A가 울산의 OO으로 이사 갔는데 제가 [시외]버스 타고 CD 플레이어 들으면서 창밖 보면서 혼자서 막 시이나 링고 빙의하고 그런걸 좋아했었는데 ... 울산 가서 A를 만나고 A 어머니가 하는 피자가게도 같이 가고 피자도 얻어먹고 노래도 부르고 이러면 둘이 같이 놀았단 말이에요. A는 친구들과 있을때와 저와 1 대 1로 있을 때 뭐 하는 행동이 되게 달랐었거든. 그래서 엄청설렜던 거지. 그래서 내가 울산을 좀 많이 갔었어. 물론 걔도 이제 부산으로 오러 갔었지만 약간 목적이 달랐지.
깻녹 A가 부산으로 오는 게 모임에 가는 거였고 나는 A를 보기 위해 울산으로 갔었죠, A가 고등학생 때 백일장 나갔었는데 따라갔던 기억도 있어요. 생각해 보니까 그때 울산에 장미공원이 있는데 거기서 백일장 했었는데 그냥 따라가고 걔는 글 쓰고 나는 옆에서 그냥 기다렸어요.
비타 완전 따라다니셨다. 진짜
깻녹 티가 안 날 수가 없는 거죠.
비타 문학 카페 회원분들에게도 커밍아웃 하셨어요?
깻녹 문학 카페에서 커밍아웃한 건 다른 시기에요. 서울에 사는 형이 부산으로 와서 다같이 만나서 잤는데 저는 안 갔어요. A랑 같이 자는 게 싫어서 안 갔는데 [그동안 A와 저 사이의 일들이 있으니까] 그 형이 갑자기 저보고 "너 게이였냐"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제가 "아니 너 왜 그런 말을 해" 약간 이렇게 말을 안 하고, "어떻게 알았는데"고 말해서 애들도 벙 찐 거지, 그걸 제가 진짜로 말할 줄은 몰랐다는 약간 그런 느낌으로. 카카오톡으로 그걸 왜 말했냐 이렇게 나한테 카톡을 보내고, 막 그 형도 그러고. 내가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니까, "그럼 니 남자 보면 서?" 이렇게 물어봤는데 얼굴은 시뻘개지고, 아무 말도 못했어요.
비타 이후에도 A를 보신 적이 있나요?
깻녹 QIP 활동했을 당시에도 A를 봤긴 봤어요. IDAHOBIT 데이 때 드랙퀸 골든사워랑 린다볼이랑 문디가르시나랑 서면에서 집회하면서 드랙쇼를 했었거든요. 그날 문학 카페 친구들이랑 선약이 있었는데, 제가 집회 현장에 가서 맨 앞에서 흔들고 있으니까 [문학 카페] 걔들은 같이 못 있었던 거지. 멀리서 저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비타 A와의 서사는 이소라 결말에 가깝네요. 차도에서 인도로 나를 끌여당겼던 첫만남 시절부터 시작해서 집회 한복판에서 깻녹 님은 드랙 현장 앞에서 연대했고, A와 [문학 카페] 다른 무리들은 멀리서 멀뚱히 지켜만 봤다는 것으로 끝나는.
3. 정체화 과정-퀴어 커뮤니티 입문
비타 이제 퀴어 커뮤니티에 접근한 계기를 물어볼게요. 중학생 때 A를 좋아하면서 동성을 좋아한다는 걸 자각하셨잖아요. 그때 나를 설명하는, 게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뭔갈 찾아보고 그러셨나요?
깻녹 게이 검색은 프루나에서 가장 먼저 했어요. P2P 사이트인데 처음에는 게이로 안 치고 야오이로 쳤었나
비타 그러다가 야동에 접촉했지만, A를 만나고 나서 확실하게
깻녹 제가 좀 아둔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빠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외할머니한테 길러져서 성교육이라는 걸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저는 애를 똥구멍을 낳는 줄 알았어. 초등학교 절친이랑 임신 얘기하다가 애기를 똥구멍으로 낳지 않냐고 얘기하니까 얘가 엄청 황당해 하면서 컨셉 잡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비타 순진?하긴한데 약같 뒷걸음질로 알파 오메가 유니버스를 포착하셨네요.
깻녹 그렇게 해석은 안 해 봤는데 그렇구나. [무시]
비타 QIP에 가입하게 된 과정은요?
깻녹 문학 카페에 가입했었던 것처럼 그때는 네이버 검색창에 게이라고 쳐가지고 네이버 카페에 가입했어요.
비타 진짜 중요하구나, 네이버 카페.
깻녹 네이버 카페가 제 인생에 엄청 중요한 커뮤니티 [통로]였어요. 아무래도 네이버 문학 카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고, 그 사람들이 되게 소중한 인연들이었어요. 제 청소년기가 되게 가난했었고 그런 시절 속에서 특히나 정상성과 좀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또, 성적으로 그런 기질이[동성 지향] 있는 거를 알고 부끄러워했는데, 문학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도 정상이 아니었어요. 순수 문학도 있지만 판타지 문학 쓰는 애들도 많았고, 오타쿠 아니면 다 멘헤라였던 거죠.
비타 문학 카페 회원 분들도 학교 생활에 미스핏(부적응)인 분들이 계셨구나.
깻녹 그렇죠 저는 심지어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서 3월에 자퇴했었어요.
깻녹 어쨌든 네이버 검색으로 돌아가서, B2라는 부산 게이 카페에 가입했어요. 어느 날 심심하다고 글을 썼는데 심심하면 저랑 같이 놀아요 이렇게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그래서 사상 삼락공원 만났죠. 만났는데 덩치 엄청 크고 완전 뚱뚱한 애가 나타났어. 이제 나한테 탑이냐 바텀이냐 물어보고 이런 거야. 근데 나는 처음 만났는데, 이런 얘기 좀 작게 얘기하면 안 되냐 그러니까 어차피 여기 지나가는 사람은 한 번 보고 지나갈 사람들인데 무슨 상관이냐 이러는 거야. 그래서 너무 쪽팔렸거든. 그리고 공원에서 안으면서 자기는 친구끼리도 오랄[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랄을 하는 거야. 그래 갖고 약간 좀 거북스러웠지. 그러고 이제 걔가 자기 집에 가서 나가수[나는 가수다]보자고 해서 보러 갔는데 저를 껴안더라고요. 걔가 잠들길래 싹 빠져나왔고, 나 먼저 갈게 쪽지 써두고 갔던 것 같아. 이렇게 마무리 된 후에 두 달인가 있다가 또 생각이 나서 문자로 같이 놀자고 했는데, 걔가 지금 친구들이랑 범일동에서 술 마시고 있다고 해서 가본거죠. 매니아라는 [게이 바에] 갔었어요. 그때는 조명이 완전 취조실 조명이라 다른 테이블은 거의 안 보이는 정도의 조명이었거든요. 그렇게 처음으로 범일동 데뷔를 했고, 걔랑 걔 친구랑 셋이서 같이 마셨는데 나중에 술이 너무 취해서 방 잡고 놀자고 했는데 걔는 PC방 갈 거라고 쏙 빠진거죠. 그렇게 걔 친구랑 같이 잤는데… 제가 자고 있는데 막 하더라고요. 저는 얘가 식이 아니었는데 걔는 저를 애인 된 것처럼 하니까 부담스러워서
나는 번개하고 나면 잘 안 맞아.
고 핑계를 댔어요. 하여튼 이 처음 만난 친구가 지금 제가 만나는 친구들 두 명을 소개시켜 줬었어요. 그 친구 중 한 명[록환]이 QIP에 먼저 들어간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무지개 속 적색'이라는 책으로 오픈 세미나를 하는데 들으러 오라고 했어요.
비타 이거 닭살튀김 님 인터뷰 했을 때 들었던 것 같아요.

깻녹 제가 문학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보니 진보적인 친구들한테 아나키즘이라든가 상호 부조주의, 그런 것들을 알려주면서 영향을 받았고 그 당시 저도 미셸 푸코 책 되게 좋아했어요. 감시와 처벌, 광끼의 역사 그런 거 읽고
비타 광끼의 역사요?

깻녹 아무튼 저는QIP 오픈 세미나가 마음에 들었는데 같이 왔던 형은 세미나 유인물에다 계속 낙서만 삼각김밥 제육볶음 이런 낙서 쓰고 지루했나 봐요. 그 형은 회원 가입 안 하고 저 혼자 가입 했어요.
비타 그렇게 가입을 해서 QIP 운영진까지 되셨잖아요. 그건 어쩌다 되신 걸가요?
깻녹 2014년에 가입하고 2년이 지났을 무렵 운영진을 하라는 제안들이 들어왔고 나도 여기를 위해서 좀 고생을 해보자 뭐 이런 좀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맡게 되었죠. 제가 했던 시기가 부산대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에서 부산 성소수자 인권 모임으로 이제 넘어가는 시기였고, 반 년 동안 이렇게 운영을 했어요.
비타 QIP 가입했던 시기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깻녹 제가 대표로 있었을 때 기획했던 프로그램인데요. 퀴즈라는 프로그램이었고 청소년 성소수자 관계맺기 프로젝트로 5회기 동안 이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1

비타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생기셨나요? 문학에 대한 관심이 어떤 계기에서 상담으로 넘어간 것 같기도 해요.
깻녹 20살 2학기 때 시를 쓰기 위해서 방통대 국문과에 들어갔어요. 고등학교 자퇴하고 19살부터 공장에서 주5~6일 일을 했는데 공장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자유도가 많이 사라졌고,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예민함이라든가 상상이 되게 무뎌졌던 시기였었어요. 언어라는 것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꼈던 시기 였어요. 처음에는 문학의 외연을 좀 넓혀야겠다는 생각에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에다가 저희 엄마가 정신병이 있어서 상담심리학과가 있는 사이버 대학으로 편입을 했어요.
비타 그렇게 상담으로 이어지는 군요. 깻녹 님이 기획하신 퀴즈는 어떤 프로그램이었나요?

깻녹 총 5회차 프로그램이었는데, 자기 자신이 어떤 정체성인지 이야기하는 거도 있고, 커밍아웃 편지 쓰기 이런 부분도 있었어요. 제가 맡은 프로그램은 이제 퀴어 인 뉴스라고 해서 미디어 속에서 성소수자가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소셜 드라마라는 사회극 프로그램으로 다뤘어요. 예를 들면, 뉴스 안에서 성소수자가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지 이런 것들을 각자 이렇게 장면들을 선택해서 연극으로 만들어보는 거죠.
그 프로그램 홍보하려고 탑지, 탑엘, 트위터에 올렸어요. 첫 회기에는 8명 정도 왔다가 2명 빠지고 최종 6명과 함께 했어요. QIP에서 회원 대상으로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해봤다는 점에서 [제게] 의미가 컸어요.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QIP에 가입했던 분도 계셨고요,
비타 QIP 내 구성원들을 위한 커뮤니티 사업보다는 복지 사업에 가까웠네요.
깻녹 재밌었어요. 처음 사업을 기획할 때는 멘토 멘티 형식으로 청소년과 만나자고 생각했지만 좀 더 평등한 관계에서 우리가 만나보자라는 의도로 수렴됐어요. 그래서 제가 뭘 가르쳐 주기 보다는 프로그램 참석자들과 함께 배운 날이 많았었죠. 특히 부모님께 커밍아웃 편지 쓰기 하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3.1 QIP 연말파티
비타 QIP 시절에 있었던 연말 파티에 대해서 좀 더 좀 실감나게 얘기를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깻녹 서면의 오즈홀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약 100명 넘게 왔던 것 같아요. 애들이 진짜 열심히 준비를 했었어요. 연말파티 동영상이 지금 아직 남아 있을 거야. 그 카페에 하여튼 애들 막 예를 들면은 글리 뮤지컬 공연을 연습한다거나 레즈비언 애들 모여서 레드벨벳 덤덤 준비하고 오기도 기모노 입고 아마기고에 공연하고 장난 아니었어요. 저도 한영애 '코뿔소' 하고 무대를 디비[뒤집어의 사투리] 놨었죠. 그때 부대 신문 있었는데 부대 신문에서 뒤집었다는 뉘앙스의 기사를 썼고요.
비타 왜 코뿔소 였나요? 연습은요?
깻녹 한영애 좋아하니까 한영애 했죠. '누구 없소'는 너무 올드하고 '코뿔소'는 그래서 좀 되게 락킹한 사운드니까. 근데 이제 코뿔소 코러스에서 떼창만 하는 부분이 있어요. 밴드 세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밴드 반주를 내가 따로 녹음한 게 없고, 그냥 노래방 반주를 녹음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간주가 끝나다가 뮤지컬적으로 둥둥둥둥둥 비트만 들리다가 간주가 발생하는 흐름의 노래란 말이에요.

비트 타는 부분에서 제가 무대에서 누웠다가 일어나면서 덤덤덤 기리 덤덤 이러면서 스캣을 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을 따라하게 주고받기를 한 거죠. 그러다가 반주를 켜달라고 사인을 보내고 노래를 완창했어요.
깻녹 그리고 연말 파티에서는 공연뿐만 아니라 음료, 술, 칵테일을 엄청나게 팔았고 타로 카드 하는 회원들도 있었고, 이런 방식으로 진행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왔었어요.
비타 연말 파티가 할로윈 시기의 파티예요? 아니면 크리스마스 연말을 말해요?
깻녹 연말 12월 31일, 그 날 딱 바로 카운터 다운을 세요. 진짜 그리고 같이 카운트다운을 봐요. 그러고 같이 이렇게 밤새고 국밥집에 가서 국밥 먹고 헤어지는 게 그거예요.
비타 그러면 QIP에는 할로윈 파티, 연말 카운트다운 파티 2개가 있었군요.
깻녹 파티가 2개 있었던 거죠. 이 두 개가 QIP에서 중요한 행사였어요. 품도 많이 들어가고. 할로윈 파티는 드랙 프롬 같은 느낌이었던 거죠. 퀴어들이 그런 걸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되게 애들이 분장 열심히 했어요. 이때가 금숙이하고 문디가르시나 초창기애요. (편집자주-부산에서 드랙 활동을 하는 드랙퀸의 활동명이다)
비타 이분들도 QIP 멤버들이셨어요?
깻녹 이 분(편집자주-골든사워)이 QIP 초대 회장이에요.
비타 드랙 프롬 파티 경험이 현재 부산의 드랙 클럽[편집자주-타이트홀] 활동으로 이어졌다는게 대단하네요.

3.2 QIP에는 마녀들이 있다?
비타 QIP 커뮤니티 활동이 소강된 후로도 회원들고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깻녹 지금도 거의 매일 연락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 '마녀들의 회합'이라는 단톡방이 있는데, 공식 모임은 아니고 QIP 출신들이 어쩌다 만든 모임이에요. 구성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은 자우림 노래를 다 좋아해요. 만들어지게 된 건, 친구들 중 한 명이 주도적으로 자우림 노래를 부르는 노래방 파티를 결성했고, 자우림 노래만 불러야 했어요. 선곡이 겹치면 안 되서 미리 공유를 하고 갔었어야 됐고 각자 이 노래를 선곡한 이유라든가 콘셉트에 대해서 밝혔었어야 했어요. 왜 그렇게 또라이 같이 놀았는지 모르겠고, 그 날 정산하면서 이제 방을 만들었는데 그 정산한 방 제목이 마녀들의 회합이었고 그렇게 이루어졌던 거예요. 그러고 그냥 쭉 이렇게 이어지고 있어요.
비타 그러다가 점점 설정이 붙고 그렇게 되셨군요.
깻녹 네 예를 들어 고독의 마녀, 파멸의 마녀, 색욕의 마녀 그런 느낌으로.
비타 일곱개의 대죄 타이틀 같네요... 깻녹 님은 어떤 마녀를 담당하시는데요?
깻녹 저는 요즘 별명은 그냥 하우스 오브 차예요. 마녀들의 회합 멤버 중 한명이 미쳤는데요. 얘 습성이 뭐냐면은, 한 사람을 약간 미친 듯이 악개질을 하거든요. 지금은 그 악개질이 제 차례에요. 유료 GPT 구독해서 저희 사진으로 동영상을 합성하고, 지금은 제 악개용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만들었어요. 오늘도 스토리를 올렸더라구요.
비타 악개질 차원이 다르네요. 그분은 무슨 마녀 담당이신데요?
깻녹 미친 마녀죠.

3.3 QIP 이후의 커뮤니티 활동 —부산 녹색당, 홍예당
비타 QIP 이후에도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계시고 또 깻녹 님은 홍예당 창립 멤버시잖아요, 그걸 어떻게 되신 거예요?
깻녹 2020년 1월. [홍예당 대표] 모리가 처음에 부산에서 인권 단체가 아니라 이제 커뮤니티 클럽 형태의 문화 기획이라든가 문화 플랫폼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모리의 지인이자 QIP 회원이었던] 호두가, 그러면 깻녹 씨를 찾아가 보세요. 이렇게 연결이 된 거예요.
비타 그러면 깻녹 님이 또 다른 홍예당 창립 멤버이신 전인 님과 알리 님을 모리 님과 이어주신 건가요?
깻녹 네,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모리가] 물어봐서 그 두명이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인이한테 처음에 먼저 전화했어요. 근데 마침 바로 옆에 알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둘이 당시에 썸 타던 사이였던거죠.

비타 깻녹 님이 부산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있길래 소개가 됐던 걸까요?
깻녹 위상은 없었는데.. 그땐 제가 QIP 대표하던 시절도 아니었으니까. 아 그때 내가 녹색당 활동할 때인가 보다. 당시에 녹색당 활동이 활발했던 때였고, 사이코드라마 선생님이 녹색 당원이었는데, 당원 가입을 권유하셨어요. 심리극 학회에서 뵀던 분인데 제가 심리극 전문가 준비하던 시절이었어요.
비타 깻녹 님의 커뮤니티 층위는 굉장히 다양하네요. QIP에서 홍예당으로 이어지는 것들 사이에는 녹색당 정당 활동과 깻녹 님의 상담 심리학의 길, 그리고 당시 친구들까지 모든게 엮이는군요. 퀴어 커뮤니티 및 의제 활동을 대학가 중심적으로 생각했었는데, 부산의 퀴어 커뮤니티 및 의제에서 정당활동의 역사, 그러니까 녹색당을 더 깊이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녹색당은 언제 가입하셨고 어떤 활동을하셨나요?
깻녹 녹색당 가입은 18년도에 [QIP 회원] 호두, 그리고 우리 사이코드라마 쌤이 권유했었고 제가 정치에 관심있으니까 가입했죠. [녹색당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관련 활동 그리고 페미니즘 이런 활동들을 많이 했었고 그리고 그런 게 성평등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었어요. 그리고 당연히 그것만 활동한 건 아니고 이제 뭐 환경의제라든가. 어쨌든 성평등 의제로 활동을 이렇게 했어요. 그때 4명이 이렇게 있었는데 그 4명들하고 이렇게 프로젝트 활동도 하고 이런 식으로 했었어.
비타 그게 호두, 삭미 님이에요?
깻녹 호두는 주도적이지 않았고 삭미랑 지안 씨랑 나랑 메밀. 녹색당의 이념이나 이런 것들이 좀 새롭고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탈휴머니즘 정당이잖아요. 다원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적 정치 이념을 가진 정당이 있고 퀴어 의제하고 상당히 맞아떨어져 있는 지점이 많잖아요.
비타 그렇게 홍예당의 창립 멤버가 되셨군요. 그런데 깻녹 님은 19살 때부터 공장을 주5~6일 다니면서도 커뮤니티 활동을 하셨던 거잖아요. 쉽지 않았을텐데, 커뮤니티에 꾸준히 나오는 동력이 궁금해지네요.
깻녹 20대 시절 생각해 보면 주변 친구들이 너는 진짜 항상 바쁘다 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항상 뭔가 스케줄이 있으니까. 근데 저는 홍예당 활동 같은 건 내가 하고 싶다는 욕구보다, 이게 존속할 수 있도록 내가 서포트를 해줘야겠다, 이 마음이 훨씬 더 컸었어요. 이런 것들이 되게 의미 있는 활동이고, 그리고 성소수자들과의 만남을 술과 유흥 커뮤니티 혹은 인권 커뮤니티 이런 이분법 구도가 아니라, 문화라는 맥락에서 만날 수 있는 어떤 공간을, 심지어 서울도 아니고 부산에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이런 기회를 그냥 두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서포트하는 사람의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고요.
비타 최근에 제가 성소수 친구와 대화할 때 느꼈던 것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퀴어 커뮤니티나 인권 단체 후원을 넷플릭스 구독과 같은 선상에서 보는 경향이 근저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후원자라기 보다는 구독자의 성격이 강한 것 같아요. 깻녹 님께서 방금 말해주신 홍예당의 소중함이라는 건, 구독 서비스 이용과는 다른 층위인 것 같은데, 어떻게 서포트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파생됐는지 궁금해지네요. 오늘 깻녹 님의 문학 카페부터 시작하는 커뮤니티 경험, 사람들과의 부대낌과 이어질 것 같기도 하고요.
깻녹 그러네. 그런 연속선상에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지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 커뮤니티들을 통해서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할 때 경험하는 안정감이랄까. 문학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고백하거나 그 사람 내면에 있는 어떤 진솔성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되기도 하잖아요.
비타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깻녹 님의 주 감정은 뭐였을까요?
깻녹 글쎄요. 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보통은 먼저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언어화 하려니까 좀 어렵긴 하네요. 시선이 타인을 향해 있으면서 또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관심도 되게 크긴 하죠.
4 상담사 깻녹
비타 방금 말씀하셨던 ‘사람에 관한 관심’이 현재 상담심리 활동과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번엔 상담사 깻녹 이라는 위치에서 질문을 이어갈게요. 석사 학위 논문으로 트랜스젠더 우울증과 자살생각에 관한 주제로 작성하셨잖아요. 그 주제를 [1]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2] 성소수자 상담 프로그램 ‘팀사이비’ 활동, 그리고 [3] 상담사로서 깻녹이 지향하는 바가 궁금해요. 2
깻녹 아까 말했건 것처럼 상담심리는 가족 중에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었고 제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퀴어 커뮤니티의 우울, 특히 트랜스젠더 친구들의 자살 생각에 대한 관심을 좀 많이 가지게 됐어요. 대학원 입학은 제가 관심 있던 게슈탈트 치료를 연구하려고 들어갔어요. 게슈탈트 치료를 공부하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연구 주제도 성별 소수자 스트레스, 혹은 소수자 스트레스를 변인으로 해서, 게슈탈트 변인들과 자살 생각 간의 관계들를 분석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도 교수님이 퇴임하셔서 지도 교수님이 바뀌었는데, 바뀐 지도 교수님은 인지행동 치료를 쓰시는 분이라 지도를 해주실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게슈탈트 [방법론] 논문은 못쓰게 됐어요.
비타 그러니까 대학원에 입학했던 건, 게슈탈트 방법론을 수련받기 위함이 컸군요.
비타 대학원 얘기는 여기까지만하고, '팀사이비' 결성에 대해 얘기를 들어볼까요?
깻녹 일단 팀사이비는 지속되는 프로젝트는 아니고, 지금 프로젝트 끝난 거예요. 처음에 QIP에서 록환이라는 친구가 기획했어요. QIP가 2024년 말에 모임을 해산하면서 남아 있는 자금으로 사이코드라마나 상담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다양한 층위의 성소수자를 만나는 걸 목표로 5회기의 사업을 진행했어요. HIV 감염인, 청소년 성소수자, 직장인 성소수자, 심리학 강의, 그리고 심리 교육 전문, 김정일 정신과라는 데 있는데, 거기 정신과 심리극 팀이랑 협업해서 사이코드라마를 진행했어요.

비타 성소수자 당사자 혹은 성소수자 친화적 상담사를 위한 사업이었군요. 회기를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깻녹 일단 사람 모으는 게 쉽지가 않았어요. 청소년 성소수자 회기는 띵동을 통해 홍보했는데 반나절 만에 바로 채워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띵동의 파워가 정말 다르다, 커뮤니티의 힘이 있으니까. 그리고 청소년 성소수자 분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목말랐구나, 이런 걸 좀 느끼기도 했었고. 심리 상담도 잘 안 오는데 이제 심리극이라 하니까 더 낯설어서 사람들에게 이걸 어떻게 올 수 있게끔 하느냐. 우리가 일반인들 대상으로 모집을 했다면 좀 더 이렇게 모으기가 쉬웠을 텐데, 성소수자라는 것은 사실 우리가 친구를 대상으로 심리극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모으기가 더 쉽지 않았던 거죠.
비타 심리 상담의 사업 예비 수혜자가 친한 내 친구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상담 자체가 서로를 모르는 사이어야 안전하다는 특수성이 있군요. 깻녹 님은 성소수자 상담을 진행하면서 좀 더 염두에 두는 것이 있을까요?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성소수자 상담 사례에서 특수성을 느꼈던 것들이 있을까요?
깻녹 네, 있죠. 아무래도 내담자가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에 경험한, 파생된 다른 문제들을 많이 경험해 봤던 것 같아요. 박탈감이 꼭 성소수자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성소수자 아닌 헤테로섹슈얼, 거기서도 박탈이라는 건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가 갖지 못하는 것, 혹은 자신이 어떤 커뮤니티나 정상성에서 벗어나 있다고 인지하게 될 때 느끼는 소외감이나 자의식이 되게 자신을 괴롭게 만들죠. 박탈감이 과거의 자기 자신을 해하는 방향으로 가면 우울로 가게 되고요. 미래의 자기를 향하게 되면 불안으로 가죠. 저는 상담 과정 안에서는 박탈되지 않는 경험을, 같이 나눠볼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어떤 경험을 하는 것이 상담에서 가장 제공돼야 될 점이라고 생각해요
비타 상담에서 회복이라는 개념을 깻녹 님의 언어로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깻녹 어려운 질문이네요.
비타 그러면 일단 제가 개인적으로 상담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공유해볼게요. 상담을 내 몸과 마음을 솔직하게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힘과 근력을 키워주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일차적으로 상담 공간은 안전하고 편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상담사가 성소수자에 대해 적대적이라고 내담자가 판단해 버린다면, 내담자는 상담자 앞에서 ‘해명’ 혹은 변명의 방식으로 자신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고, 그건 나를 방어해야 하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상처를 입히게 되죠. 만약 퀴어 친화적 상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내담자가 상담자를 믿을 수 있고 퀴어 얘기이든 아니든 간에 내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기서부터 회복을 시작할 수 할 것 같아요. 더 덧붙여주실 수 있을까요?
깻녹 네 아주 정확하게 정리해주셨네요. 회복을 엄청 단순하게 말하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게 만드는 거예요.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 그것에 대해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인 거죠. 디스포리아를 느끼지 않는 거죠. 불편함, 불쾌감 이런 것들은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할 때 느끼게 되잖아요. 그것이 외부에서 온 것이든 자기 자신의 생각에서 온 것이든 감정 소화를 돕는 것이 회복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거고 그 소화를 그냥 원활하게 해주는 게 상담의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깻녹 예를 들면 제가 게이라고 해서 다른 정체성이나 성적 패티시에 대해 전부 다 이해를 할 수는 없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것들을 그냥 퉁 치고 괜찮아 이렇게 하는 거는 그건 상담은 아니에요. 내담자가 어떤 맥락에서 정체성과 패티시들을 선호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선호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맥락들이 어디에서 나타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들 때 얼마만큼 연결되는 느낌이 드는지에 대해서 같이 공감해 보고 이해하는 과정들을 거치는 과정이 중요해요.
깻녹 만약 내가 게이고, 애널 섹스를 좋아하지만 애널 섹스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상담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느낌을 인정하거나 혹은 느껴보는 과정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혐오의 감정이 좀 더 달라질 수 있거든요. 다르게 변형될 수 있어요.
깻녹 트랜스포비아든 호모포비아든 젠더 디스포리아든 이런 것들이 전부 이물감, 이질감, 자신에게 존재하는 것이 없어져야 될 것 같고 이상한 것 같고 뭔가 이런 느낌이 없어지면 내 삶이 더 편할 것 같고, 그래서 이런 것들이 내가 지금 현재 갖고 있어서 미래에 더 힘들어질 거야라는 생각으로 가게 되면 불안이 되는 거잖아요. 이물감을 둥글게 둥글게 연마를 해서 소화를 시키는 거죠.
비타 깻녹 님 얘기를 들으니까 자신의 자아 안팎을 일관성있게, 매끄럽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오히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상담이 자신의 감정을 섭식하는 과정이라면, 내가 어떤 순간에는 a 형태로 존재하고, 어떤 순간엔 a와 대치될 수도 있는 b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데, 이걸 매끄럽게 일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불안이나 우울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상담은 내 안의 모순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게 아니라, 내 안에 a와 b의 형태가 동시에 있다는 모순을 인정하고 통일이 아닌 통합적인 형태의 나로 있게 하도록 돕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고, 상담이라는 건 어쩌면 자기 서사를 생성하고, 멈추지 않고 그것을 끊임없이 촉진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비타 그렇다면 상담의 종결은 뭘까요?
깻녹 상담에 종결이 없다고 생각해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종결]은 내담자가 그만할 때가 됐다라고 하는 게 이상적인 거겠죠. 상담자 없어도 내가 어느 정도는 살 만하다라는 걸 느낄 때 가장 상담이 완결돼야 될 지점, 이상적인 상담이 종결돼야 될 지점 아닐까요? 그 지점까지 가는 게 쉽지는 않죠.
비타 얼마 전에 도널드 위니콧이 쓴 《충분히 좋은 엄마》를 읽었어요. 위니콧은 아동 심리를 연구한 정신분석가인데 그 책이 재밌었던 것 중 하나는 아이 발달 과정에서 아이의 심리보다는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의 심리에 주목을 한 게 흥미로었어요. 또 흥미로웠던 건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 어떤 대상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싫어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관문이 질투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성인 아동이든 간에 양가 감정이라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 나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깻녹 맞아요. 위니콧은 대상 관계 이론이라고 하는 학문에서 이제 다루는 이야기들인데 결국에는 좋은 대상을 내면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불신이나 피해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게 되면서 심리적인 문제들을 반복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좋은 대상을 내면화하는 게 상담의 핵심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상담에서 내담자를 계속 품어줘요.
비타 애정을 주고받고 서로 신뢰하는 대상을 만드는 거라면, 이게 돌봄 연습과도 이어지는 것 같네요.
비타 상담사 깻녹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 궁금해요.
깻녹 성소수자 내담자들을 계속 만나고 싶다는 욕구는 있어요. 제가 사이코드라마나 게슈탈트를 계속 하는 이유는, 다른 상담들보다 되게 창의적이고 좀 여러 가지를 활용할 수 있고,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 관점에 대해서 뭔가 영감을 주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이코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소재가 될 수 있어요. 내담자의 이야기들을 도구들을 통해서 펼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지금 여기에 볼펜 두 개가 있다고 하면, 연극에서는 이게 비타 씨가 되고 이게 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비타 일종의 "상관물”이 되는 거네요.
깻녹 상관물이 되는 거죠. 이런 것들로 구조물을 만들 수도 있고, 뭐 예를 들면

깻녹 이렇게 만든다는 거죠. [아래 볼펜이] 이게 비타 씨, [위의 볼펜이] 저예요. 어떤 느낌이 들어요?
비타 제가 바닥에 깔려 있네요. 깻녹 님은 제 위에 있고. 뭔가 굉장히 상징성을 노린 것 같고요. [웃음] 사이코드라마는 상관물을 통해 저 자신을 멀리서 객관화시키는 기법이군요.
깻녹 객관화시키기도 하고, 거기에 해석을 넣는 거죠.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게슈탈트를 형성한 거잖아요. 이 사람이 보이는 걸.
비타 지금 나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도 물어보는 거군요.
깻녹 그런 것들이 재밌어요. 현실에서 못하는 거잖아요.
비타 문학적인 상상력이 키워지겠군요.
깻녹 그런 상담을 하고 싶어요. 이 세상에 있는 것들, 내담자와 상담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함께 있는 소품들을 활용할 수 있고, 뭔가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지금 여기 있는 걸로 다 할 수 있는 상담, 그런 상담.
비타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게슈탈트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타이밍을 잘 잡는 게 되게 중요할 것 같아요. 단서를 잘 잡기.
깻녹 그래서 약간 무당적인 그런 느낌도 있는 거지.
5 나가며—커뮤니티는 만나고, 놀고, 미끄러지는 곳.3
비타 문학 커뮤니티를 거쳐서 퀴어 커뮤니티, 녹색당 정당 활동, 이번 인터뷰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불교 성소수자 모임 불반에서의 활동, 그리고 상담까지 많은 곳을 거처로 삼으신 것 같아요... 깻녹 님은 커뮤니티의 경험을 "어떤 사람 내면에 있는 진솔성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의 발견이라고 하셨고, 상담에서는 " 상담 안에서만큼은 박탈되지 않는 경험"이라고 말씀하셨고요. 저는 이것이 비슷하게 들리는데, 커뮤니티의 경험부터 현재 상담 활동까지의 접점을 부연설명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깻녹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시를 썼을 때, 습작생 커뮤니티에서 만났던 어떤 형의 말이 기억나요. 겨울 저녁에 떡볶이 를 사서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지나는데, 한 아저씨가 골목길에 누워 잠들어 있었어요. 걱정이 되어 괜찮으시냐고 하고 흔들어 깨웠는데, 아저씨가 제 손을 잡더니 "손이 참 곱네"라고 하면서 한참 쓰다듬는 거예요. 기분이 이상해서 뿌리치고 집으로 달려가서 채팅으로 그날 저녁의 일을 무용담마냥 늘어놨는데, 그 형이 제 얘길 가만 듣더니 네가 문학을 한다면 그 아저씨의 깊이로 들어가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어요. 그 아저씨는 네 손을 잡고 아내의 손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라고 하면서 김수영 시인이 말했던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시론을 이야기하는 거였죠. 그땐 그 말이 되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었고, 지금도 의미 있는 말이라 생각해요.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깊은 공감이고, 문학이 개입할 수 있는 자리이죠. 제가 경험한 커뮤니티는 진솔성을 만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인간의 규범과 자연성이 혼재하는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에 공감과 진솔성이 만남의 최우선이 될 수는 없었어요. 각자 지향하는 규범, 활동 동기,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시간을 지나면서 커뮤니티를 떠나고, 자신의 역사 속에서 각자 다른 커뮤니티로 들어갔지요.
깻녹 반면 상담은 회복과 자기성장을 목표로 내담자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매우 인위적인 환경이에요. 심리극에선 '역할교대'라는 기법이 있는데, 상대 역할이 '되어becoming' 그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를 헤아리는 심리극의 핵심적 기법이에요. 심리극을 창안한 모레노 박사는 양성, 종족, 세대, 병자와 건강인, 사람과 물상, 삶과 죽음 간의 차이점이 그들 간의 소통을 방해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법들이 필요하다고 보았어요. 심지어 그는 참만남(encounter)은 심리극이라는 인위적 환경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어요.
깻녹 하지만 존재 간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왜 만나야 할까요? 겨울 저녁 아저씨가 제 손을 잡고 중얼거린 말을 제가 "호모-섹슈얼한" 감각으로 느끼지 않았다면, 습작생 형이 제가 아저씨의 손을 뿌리친 것을 "부랑자에 대한 혐오감"으로 읽어내지 않았다면, 심지어 아저씨의 말에서 "아내의 빈 자리"라는 이성애중심적 상상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저는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상담적 관점에선 커뮤니티 안의 우리가 다른 존재임을 선명하게 깨달을 때,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선명해질 거예요. 어쩌면 그 차이가 주는 감동이 '진솔성'일지 모른다고, 저는 생각해요. 동시에, 커뮤니티 안에서 적당한 오해가 허용되어야 하고 그 오해가 차이를 생성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상담자는 '정확한 공감'이 불가능한 영역임을 알지만 그러기 위해 훈련하고, 어떨 땐 그런 자신을 '충분히 좋은 엄마'로 포지셔닝하죠. 하지만 자연인으로서의 우리는 적당한 오해 속에서 살 때 더욱 타인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비타 지금 이 시점에서 깻녹 님께 커뮤니티란? 커뮤니티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깻녹 커뮤니티는 제게 사람들과 만나고 노는 장소죠.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그 역할에서 벗어난 적은 없어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 적도 없고요. 진솔성을 만난다거나 하는 건 사실 부차적인 거예요. 문학이면 문학, 인권이면 인권, 불교면 불교, 친목이면 친목, 각자의 목표가 명확해요. 하지만 만남의 미끄러짐(적당한 오해)이 발생하면서, 불교모임에서 보깅을 추기도 하고 문학 카페 정모에서 동성을 처음으로 사랑하기도 하고 인권동아리에서 코뿔소를 부르고 드랙쇼를 하기도 하는 거죠. 어쩌면 모임의 목표에서 미끄러지는 이러한 행위들이 저 자신을 더욱 잘 설명하기도 하죠.
깻녹 이런 관점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정상성 사회에서 박탈된 소수자에게 자기 존재의 이물감을 소화하는 창자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커뮤니티의 역할이라기보단 효과에 가까울 것 같아요.
깻녹 자신의 존재가 받아들여지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찾고 싶어 해요. 하지만 커뮤니티가 그 사람들을 품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커뮤니티 안에서 나의 위치와 역할을 점유할 때, 내가 허용되고 받아들여짐을 느끼는 효과가 발생하죠. 저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받아들여지는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기대와 달리 배제나 박탈을 경험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이러한 착각이 주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싶어요. 어떤 커뮤니티에선 배제된 사람이 다른 커뮤니티에선 환대받을 수 있어요. 그저 그 사람에게 주어진 역할의 배치가 그 커뮤니티와 맞지 않았을 뿐이죠. '받아들여짐'의 느낌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에겐 상담과 같은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구요. 그들의 욕망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커뮤니티의 욕망이 잘못된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비타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당연히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대신에, 함께 모여있으면 그 후에 효과가 따라온다고 말하신 것이 인상적입니다. 커뮤니티가 어떤 단일한 목적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커뮤니티라는 수단은 어쩌면 기존의 목적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석
- https://x.com/quiz_2016 [본문으로]
- 성별소수자 스트레스와 자살생각의 관계에서 우울이 미치는 영향: 좌절된 대인관계 욕구의 조절된 매개효과와 자기자비의 이중매개효과,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77540b84278ee81affe0bdc3ef48d419&keyword=) [본문으로]
- 해당 챕터는 인터뷰 후 서면 질의 응답을 보충한 장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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